이석구 (Suk Koo Rhee)
2024 Visiting Scholar Program
Emory University, English Literature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 교수님들은 마지막 연구년은 국내에서 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곧 다가올 퇴직 이후를 준비하거나 그간의 연구를 차분히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시려는 의도로 여겨집니다. 이분들처럼 저도 마지막 연구년을 국내에서 조용히 보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미국에 풀브라이트 방문학자로 가겠다고 결정하게 된 연유는, 그간 감사하게도 풀브라이트에서 여러 차례 받은 혜택 덕택에 저 개인이 연구자로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제가 연구한 것을 미국의 학생들과 공유하는 등 배움을 나누는 기회를 갖지는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강의/연구 트랙인 Fulbright Korea Distinguished Chair는 저에게 지난 30여년간 해온 연구를 미국 학생 및 현지의 학자들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더욱이 에모리 대학의 강의/연구 트랙이 한국학 전공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영문학 외에도 최근에는 한국영화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던 저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기회였습니다.
이전의 연구년과 달리 혼자서 미국에서 하게 된 방문학자의 삶은 여러가지로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늘 같이 지내던 가족이 없이 홀로 사는 삶이 낯설었고, 매끼마다 제 손으로 해야 하는 식사 준비도 불편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저마다 타고난 적응력을 발휘하게 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함과 낯섦이 해결되니까 생각이 바뀌게 되더군요. 간단히 말하면, 가족들이 들으면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혼자 있는 삶을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학기 중에는 연구와 강의, 초청강연 등으로 바쁘게 지내고, 그외 시간에는 숙소에서 사귀게 된 가까운 동료들과 운동과 취미활동을 같이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거주하던 캠퍼스 내 숙소(Villa International, Atlanta)가 작은 공동체처럼 운영되는 곳인데,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 석·박사과정생 및 펠로들과 어울려 애틀란타 명소 구경도 다니고, 당구, 탁구, 수영, 래프팅 등 스포츠 활동도 같이 하였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당시의 자유로운 싱글 시절로 되돌아갔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강의도 재미 있었고, 개인 연구도 많이 했고 무엇보다 차세대 학자들과 이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혼자 가는 해외 연구년의 삶도 권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장성한 시니어 교수님들 중 연구년을 맞이하게 되는 분들께 앙드레 브르통이 한 말을 권하고 싶습니다. 길을 떠나라, 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