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 (Su Mi Kang)
2020 Fulbright Visiting Scholar
The Robotics Institute, Carnegie Mellon University

“2021년 12월에 나는 어떤 모습과 내면, 생각과 뼈로 돌아올까?” 이 문장은 내가 2021년 5월 8일 어버이날 SNS에 쓴 글의 일부다. 풀브라이트 중견연구(Mid-career Research) 프로그램 수혜자로서 5월 22일 출국을 앞두고, 90세 가까이에 이른 연로한 부모님을 찾아뵀을 때 일화를 담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소소한 용돈이 담긴 연하늘색 봉투를 어머니께 건네며 ‘먼 길 떠나는 딸에게 잘 다녀오라고 당신이 주게’ 하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와병 중인 아내가 힘내서 자식 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딸이 부모의 사랑을 깊이 품고 힘차게 새로운 연구 환경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그 뜻을 새기고 싶었다. 해서 피츠버그 카네기멜론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 이하 CMU) 로보틱스 인스티튜트(The Robotics Institute, 이하 RI)에서 6개월 동안 연구한 후 돌아올 때는 나의 존재를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 오자고 다짐하며 SNS에 그 문장을 게시했다. 그러니까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외적인 모습이나 지적 역량만이 아니라 전적인 존재가 크고 단단해지기를 바랐다.

나는 현대 유럽대륙미학에 속하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이론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 미술계에서 20년 넘게 미술 비평 활동을 해왔으며, 시간강사부터 따지면 그만큼의 시간 동안 쉼 없이 대학에서 강의했다. 그래서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의 부교수로서 첫 연구년을 맞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계획으로 해외에서 연구할 것, 시각예술 및 문화정책과 관련해 다양한 경험과 이해를 추구할 것, 대학 교육에 관한 새로운 비전을 찾을 것을 목표했다. 미 국무성과 한미교육위원단의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나의 연구년 계획에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는 조건이었다. 특히 미술계 일로 미국을 방문한 이전의 상황과 달리, 풀브라이트의 영예로운 방문학자로서 호스트 대학에 속해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꽤 긴 체류 기간 동안 미국의 풍부한 예술 문화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내게 가장 이상적이고 실천적인 연구년 플랜으로 보였다. 지원 계획을 세우고 실제 서류 준비부터 최종 인터뷰까지 여러 일들을 수행한 2019년 가을을 떠올리면 매번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그리운 느낌이 드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애초 내가 연구를 수행하기로 한 곳은 뉴욕, NYU의 Visual Arts 학과 중에서도 Interdisciplinary Studies였다. 풀브라이트 지원 서류의 필수 항목인 추천서 중 하나를 해당 학과의 명예교수가 썼을 정도로 나의 호스트 기관은 명확했다. 하지만 2020년 새해 벽두부터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이 시작됐고 전 세계 유행병(pandemic)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풀브라이트 수혜자 모두를 뒤흔들었다. 나는 소속 대학인 동덕여대의 승인으로 연구년을 한 학기 미뤄가면서까지 NYU에서의 연구 계획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NYU가 온라인으로만 학사를 진행하면서 결국 호스트 대학을 바꿔야 했다. 팬데믹에 대응해 풀브라이트 측이 정책을 유연하게 조정해 2020년 수혜자들이 2021년 12월까지 연구 기간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2020년 연말에 갑자기 새로운 호스트 대학을 찾아야 했던 내게 상황은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츠버그 CMU, RI와 연결이 되었고 나를 초청하기 위한 대학의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다. 그간 국내외 미술계 활동으로 나를 인지하고 있었고 특히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의 역사와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그곳의 작가 분과 교수님의 노력이 컸다. 당시 CMU 또한 방문교수의 초청을 극히 제한하고 있었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두 분이 애썼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한 마음 크다. 동시에 팬데믹으로 인한 나의 CMU 행은 보이지 않는 손이 그린 큰 그림의 한 조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곧 이어 쓸 나의 연구가 새로운 분야와의 접목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는 점, 생면부지였던 우리가 피츠버그에서 만나 인간적으로나 동료로서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래 전 시간강사 시절 나의 수업을 듣고 십 수 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나를 따르는 사랑하는 제자와 그 가족이 사는 코네티컷에 며칠 머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을 답사한 후 CMU 연구 시작일인 6월 1일 피츠버그 행 비행기를 탔다. 사실은 간혹 스케줄보다 일찍 출발한다는 델타항공의 아침 첫 비행기를 놓치고 오후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나는 공항 대기실에 앉아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나의 피츠버그 생활과 CMU에서의 리서치에 대해 여러 이미지를 구상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낯선 일이 벌어지든, 어떤 새로운 관계와 경험이 기다리고 있든, 어떤 미지의 지식과 전문 영역이 펼쳐지든 기꺼이 기쁘고 용감하게 맞이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비행기를 놓치는 초유의 경험 또한 내가 미래를 향해 자신을 여는 시간을 벌도록 짜놓은 빅 픽처 같다.

큰 그림의 마법은 피츠버그에서 보낸 6개월의 일상, 그리고 CMU, RI에서의 지적 모험과 연구과정 곳곳에도 아름답게 흩뿌려져 있었다. 이 말이 내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힘든 순간도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심각하지는 않았더라도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다. 출국 전 서울에서 Airbnb를 통해 구한 숙소가 위생 상태는 물론 호스트의 인종적 편견 문제로 내게는 쓰라린 경험을 안겼고, 피츠버그 다운타운에서 들은 세 번의 인종차별 발언 또한 대수롭지 않지만 여전히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일들 또한 내게는 현지에 적응하는 힘을 키우고 미국에서의 경험과 판단을 다양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자의 경우, 적극적으로 호스트와 Airbnb 회사에 이의제기를 해서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일부 피해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Airbnb 숙소를 나와 임시로 CMU 교수 댁에 며칠 머물 때는 미국 교외지역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이후 피츠버그 다운타운의 설비 좋은 아파트를 임대해 지내는 동안에는 미국인들과 섞여 일상을 살았기에 Airbnb 사건이 내게 American reality를 단기간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풀브라이트와 풀브라이트코리아가 시행하는 중간 설문, 최종 설문에 영문/국문으로 답하면서는 나의 경험을 근거로 방문교수 프로그램 중 거주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원을 고려하도록 요청할 수 있었다. 인종차별 발언에 관해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피츠버그는 내가 경험한 미국과 유럽의 어느 다른 도시보다도 인종적 편견이 없고 다양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공존하는 곳이다. 거리에서, 글로서리 스토어에서, 공원에서, 거주지에서 나는 언제나 안전했고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친절과 호의를 보였다. 가끔은 과하다 싶은 친절에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또 CMU에는 평등, 공정, 포용의 가치를 내건 행정 부서가 있을 정도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온 학생이든, 교직원이든, 방문자든 가릴 것 없이 동일한 학술 교육 조건에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았다. CMU, RI에서 나는 각종 세미나, 워크숍, 미팅, 석박사 공개 논문 심사에 빠짐없이 초대 받았고 어떤 경우에도 차별이나 배제를 당하지 않았다. Apple Picking, Halloween, Thanksgiving 같은 이벤트 때마다 CMU RI 동료 교수님들은 물론 석사생, 박사과정생과 미국식 문화를 즐겼다. 매번 진심으로 즐거웠으며 이 지식의 공동체에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때문에 길거리에서 별안간 들었던 아시아인 폄하 표현은 불쾌하기는 했어도 길거리의 생태 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국어를 전혀 쓸 수 없고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이방인의 나라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충실히 내가 구사하는 언어/영어를 통해 전달되는가? 이곳의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더 구체적이고 밀도 높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를 자주 고민했다. 특히 나의 연구와 전문 분야는 미학과 미술비평이고 내 본업이 한국어로 사유하고 글 쓰며 가르치는 것인데, CMU, RI에서는 그런 내 배경을 바탕으로 로봇공학과의 융합 연구를 밀도 높게 추진하고 싶었기에 우리의 회의가 깊이를 더할수록 나의 고민도 깊어졌다.

연구 주제인 “Convergence of Art, Aesthetics, and AI technology for the Upcoming Future”가 명시하고 있듯이, 내게는 급변하는 기술 조건 속에서 인간과 예술의 변화, 특히 지각 경험을 중심으로 한 변화를 분석하는 미학적 과제가 핵심이다. 그런 맥락에서 CMU RI에서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프로그램을 수행하게 된 것은 탁월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호스트 기관을 불가피하게 변경함으로써 더 큰 연구스케이프(research-scape)를 형성하게 된 것이니 운명의 작용이 흥미롭다. 나는 매달 zoom으로 이뤄지는 로봇공학자들의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creativity’, ‘movement’, ‘maneuver’, ‘experience’ 등 미학에서 중요한 개념들이 로보틱스와 AI 분야에서는 어떤 콘텍스트와 디테일로 논의되는지 파악해갔다. 역으로 CMU, RI 동료 교수와 박사과정생으로 이뤄진 나의 공동연구 팀은 나를 통해 현대미술의 지형, 미술가들과 작품들, 그리고 미술 비평 이론에 대해 이해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다른 연구 및 지식의 실천 분야에 속해 있으면서 점진적이고 내밀하게 서로를 향해 나아갔고, 여유롭고 열린 태도로 교류했으며, 만나기 전에는 몰랐던 서로의 분야들이 융합했을 때 얻을 지적, 문화 예술적 결실에 대해 세부적으로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또한 나는 국내 문화 예술 잡지에 피츠버그의 주요 미술관 기획 전시를 리뷰한 여러 편의 미술 평론을 발표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광주비엔날레 재단, 그리고 광주시립미술관의 요청에 응해 미국의 공공예술, AI 기술과 미래의 예술 등을 논제로 한 글을 썼다. JCSIT에 발표한 “Fascist Dangers and Aesthetic Ethics in the Digital World”는 내 미학적 관점에 로보틱스에 관한 이해가 더해지면서 기술 중심 사회에서의 위험과 미학적 윤리를 보다 균형 있게 분석한 논문이다. 이는 CMU, RI에서의 학술 활동은 물론 피츠버그 The Andy Warhol Museum 수석큐레이터와의 교류, The Frick Museum Pittsburgh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피츠버그 CMU, RI에서 연구하던 당시나, 연구를 마치고 귀국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나 내게 일관되게 떠오르는 생각은 ‘미국, 특히 피츠버그에서의 생활과 CMU 연구의 모든 순간이 좋았고, 그 속에서 나는 인생의 다른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는 것이다. 이는 나 자신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멋진 기회와 내게 베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 및 도움 덕분이다.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프로그램의 탁월한 전통과 우수한 역량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고, 동덕여자대학교와 카네기멜론대학이 부여한 연구년의 기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또 동료 교수님들을 비롯해서 나의 학생들, 한국의 오랜 벗들과 새로 사귄 피츠버그의 친구들, 제자들, 풀브라이트 임직원 분들이 함께 해줬기에 가능했다.

끝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개월 동안 무탈하게 지내셔서 내가 온전히 미국에서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두 분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나의 뼈이고 내 삶의 동력원이다. 그렇기에 성공적으로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더 온전한 생각과 몸체로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