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yeon Choi

최지현 (Jihyeon Choi)
2024 American Studies Program
Seoul, Elementary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여름은 대한민국 초등교사인 나에게 많은 실망을 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여덟 글자를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었다. 햇수로 10년차 교사였던 더이상 나는 안전하지 않은 교단에 서는 것이 두려웠고, 무너져가는 교사로서의 자아를 가까스로 붙잡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잘 가르치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라는 고민은 뒤로 한 채, ‘어떻게 가르쳐야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까’, ‘이직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이 머리에 가득 차 있던 나는 그 누가 보기에도 불행한 교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교사로서 절대 타협하거나 내려놓고 싶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영어교육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외국어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끊임없이 공부를 이어 온 나는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의 의미를 시험 점수가 아닌 소통의 즐거움에서 찾기를 바랐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학생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좀더 부담을 줄이면서도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하곤 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될 즈음, 당시 교사로서 내가 겪고 있던 위기와 놓지 못한 열정 모두를 잘 알고 있던 가족에게서 풀브라이트 영어교사 미국학 장학 프로그램(이하 ASP)에 대해 듣게 되었다. 대학교 시절, 해외 생활에 대한 꿈은 갖고 있었지만 교사 임용 시험을 위해 휴학이나 교환학생 한번 없이 졸업했던 나에게 ASP가 준 첫 인상은 단순히 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해 좀더 조사하고, 에세이를 위해 나의 신청 동기를 깊이 고민하다 보니 점차 진지한 목적을 갖게 되었다. 꺼져 가는 교사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다시 살리고, 존경할만한 선생님들을 만나 교류하며 배우고, 또 위로를 주고받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기도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EFL 환경에서 계속 관성적으로 사용하던 교수법이 아닌 ESL 환경에서 벤치마킹하여 사용할 수 있는 기법들은 없을 지가 궁금했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초등학생들이 상급학교에서 겪게 되는 영어학습의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지는지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준비해야 할 서류가 결코 적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내 스스로의 활기가 반가웠고, 교직생활 내내 공부를 놓지 않은 덕에 어느 정도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이 기특했다. 그렇게 9월 말, 서류 제출을 마쳤고 인터뷰를 거쳐 겨울을 앞둔 11월에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환상과 현실, 그 사이 어딘가를 향하여 

토요일에 미국에 도착하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Delaware의 Newark로 이동한 후 월요일에 University of Delaware(이하 UD)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바로 빡빡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수업이 UD의 산하기관인 English Language Institute(이하 ELI)에서 이루어졌는데, ELI는 일반적으로 UD 입학을 앞두고 외국인 유학생들이 대학에서 수학이 가능한 영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거쳐가는 기관이다. 오전 8시 15분부터 9시 55분까지 학생이자 수업 관찰자 입장에서 ELI 자체 수업을 수강한 뒤,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는 English Teaching Methodology 수업이 이어진다. 그후 점심시간을 가진 뒤 오후 2시에서 3-4시 정도까지 미국의 교육과 문화, 영어 기능별 집중 교수법 등을 주제로 하여 세미나와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4일차쯤 되던 날, 첫 미국행에 대한 긴장과 설렘이 가시고 수업 내용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더 심오하고 근본적인 질문들이 생겨났다. EFL 환경에서 품은 질문의 답을 ESL 환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환상을 품고 왔지만 과연 이 수많은 수업 전략들을 현실적으로 한국의 교육 현장에 적용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다행이었던 점은 ELI의 교수님들, 그리고 함께 온 한국 선생님들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이미 겪어본 사람들이란 것이었다. 덕분에 이런 고민을 꽁꽁 안고 있지 않고 워크샵 시간 등을 이용해 솔직하게 나누며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Phil Rice 교수님의 “You cannot change the society but you can make changes in your classroom.”라는 말은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줌과 동시에, 한번에 너무 큰 변화를 바라기보다 내 교실과 내 수업에 맞는 전략들을 하나씩 적용해보고 시행착오를 즐겨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완벽해 보이는 환상을 꿈꾸다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그 둘 사이 어딘가를 향하여 계속 노력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자 배움이 더 즐거워졌고, 하루빨리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스스로가 바뀌기 시작했다. 일일이 모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고민하는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조언과 위로를 해 준 한국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본 미국 

ASP 프로그램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는 그저 앉아서 수업과 과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곳저곳을 방문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더욱이 UD가 위치한 Newark는 차로 2~3시간 정도면 주요 도시들로 이동이 가능한 곳으로, 뉴욕과 워싱턴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고 공식 일정 외에도 주말을 이용해 주변으로 관광을 다녀오시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평소 유명한 관광지를 가기보다 주변을 골고루 둘러보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뉴욕과 워싱턴을 다녀오고 나서 excursion 보고서를 작성하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는 뉴욕이 워싱턴보다 인구밀도도 높고 다양한 인종, 국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훨씬 개방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워싱턴까지 보고 나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개방적인 것이 꼭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지 않을까? 불과 몇시간 뉴욕을 경험했을 뿐이지만 내가 본 뉴욕은 정말 기인들이 많은 곳이었던 동시에 각자 너무 빠른 페이스로 생활을 하다 보니 다양성을 보듬는다는 이미지는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반면, 워싱턴은 뉴욕보다 유동인구도 적고 눈에 띄는 다양성은 없었던 대신 곳곳에 나부끼는 pride flag와 함께 “우리는 나와 다른 이를 환영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는 hospitality가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단일 민족 사상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해 다문화 사회로 변화를 시작한 한국, 아직은 남들과 다르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먼저인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주변 도시로의 관광 못지 않게 좋았던 것은, Newark 인근의 여러 공공기관 등을 방문하여 문화 교류를 하며 주민과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하나의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 Wilmington Christian School을 시작으로, UD의 Early Childhood Education 학과와 연계하여 운영하는 Pre-school인 UD Lab School 그리고 Newark의 노년 인구들이 퇴임 후 시간을 보내는 Newark Senior Center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특히 Newark Senior Center에서는 퇴직한 미국 초등교사들을 몇 분 만나 말씀을 나눈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Wilmington Christian SchoolUD Lab School 견학에서는 기관의 교사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 아쉽던 차에 실제 미국 교육현장에 오랜 시간 몸담고 있던 분들의 솔직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들의 경력에 비하면 아직 햇병아리인지라 어려움과 고민들만 털어놓은 것 같아 민망했는데, 한국의 교사들이 가진 열정이 인상적이라며 한국 학생들은 참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다시 현장으로 

2024년 개학을 앞둔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은 사실 내가 ASP 지원을 준비하던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실로 돌아갈 교사인 내가 달라졌다는 것 아닐까. 한낱 개인인 내가 이 한국 사회를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나는 ASP를 통해 미국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나의 영어 수업에 녹여 나갈 것이다. 그런 수업들이 쌓이고 쌓여 나에게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달라질 것이며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고, 그렇게 조금씩 한국 사회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고민을 하며 교직생활의 전환점을 찾고 있는 선생님들께서도 ASP에 지원하기를 추천하면서, ASP에서 얻은 소중한 인연들, 보다 넓어진 내 시야와 변화한 가치관을 업고 다시 한번 힘을 내어 3월을 맞이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