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재 (Khejhae Lee)
2025 Humphrey Fellowship Program
Cornell University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한 부서에 장기 근무하기보다 몇 년 주기로 순환 근무를 하게 된다. 나 역시 식품 안전 실무를 담당하다가 국제협력담당관실로 발령을 받으면서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규제 기관의 특성상 국가 간 통상 이슈는 비교적 명확했으나, 국제협력 업무 전반은 초기에는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왔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고 참여국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성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실무자로서 고민이 깊어졌다. 이를 극복하고자 관련 세미나를 수강하기도 했으나 이론적 배움만으로는 현장 업무를 깊이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국제협력의 메커니즘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실질적인 답을 찾고자 하던 중 험프리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참가자가 정한 단일 주제로 진행되는 일반 연수와 달리, 미국의 주요 대학이 주도적으로 주제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점에서 현업의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또한 글로벌 국제협력의 중심인 미국이 타국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방식을 가장 가까이서 배울 기회라 판단하여 지원을 결심했다.
본 펠로우십을 통해 파견된 뉴욕주 이타카 소재 코넬 대학교의 CALS 애슐리 글로벌 발전 및 환경 대학원은 험프리 펠로우들에게 공식 교직원 자격을 부여하며 학내 인프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덕분에 담당 교수의 승인 하에 정규 대학원 및 학부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고, 교수진 및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할 기회도 얻었다. 지난 10개월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새로운 자극을 받는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국제 정세 세미나에 참여하고, 미국의 학자들이 각자 분야에서 지역사회 및 타국과 소통하는 방식을 깊이 있게 배웠다. 험프리 매니저가 주최하는 정기 세미나, 대학 강의 청강, 연구기관 탐방, 필드 트립 등 다채롭게 구성된 프로그램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중견 전문가 대상 프로그램인 만큼 리더십 역량 강화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그중 New York Youth Institute Food Prize 행사에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면서는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 Global Development 학부생들과 함께한 연구 협력 프로젝트(Practitioner Assistant Collaborative Training, PACT)를 통해 나의 전문가적인 실무 지식과 학생들의 신선한 학문적 시각이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실무자로서의 리더십을 점검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험프리 프로그램의 값진 경험 중 하나는 6주간의 현지 실무 연수 과정(Professional Affiliation, PA)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고 없는 외국인 펠로우에게 프로젝트를 맡기는 것은 현지 기관에도 부담일 수 있으나,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이 지닌 국제적 공신력 덕분에 이타카 시티 내의 초중고 학교 급식을 담당하고 있는 이타카 교육구(Ithaca City District, ICSD) 아동 영양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학교내에서 연방과 주 정부법을 어떻게 준수하며 급식을 안전하고 영양가 있게 학생들에게 제공하는지를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국내 공직 사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다문화적 직장 환경을 직접 체험했으며, 이는 향후 우리 정부 기관이 맞이하게 될 다문화 조직 관리와 직장 문화를 미리 경험하고 대비하는 소중한 안목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험프리 프로그램의 목적에도 맞게 한국의 대표 음식을 학생들 뿐 아니라 이타카 교육구의 급식을 담당하는 영양사 및 조리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음식의 원재료, 배경 등을 설명하는 등 문화 교류의 시간을 갖고 동 메뉴가 이타카 교육구에서 지속가능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대체 원료 등을 제안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수료를 앞둔 지금 주변 동료들에게 험프리 프로그램에 지원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있는데 이는 동 프로그램이 직장에서 제공하는 해외 연수 이상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해외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생활비 지원이 현실적으로 정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험프리 장학금은 파견 지역의 실제 물가를 반영하여 책정되며 미 달러화로 직접 지급되므로 고환율 시대에도 환전 부담이 없다. 더불어 미국 기관에서 나의 개인 계좌에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이는 나의 신용에도 반영이 되어 미국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신용카드 발급도 무리가 없이 진행되었다. 코넬 대학교의 경우 공공요금이 포함된 전용 기숙사를 사설 월세보다 저렴하게 제공하여, 나처럼 가족을 동반한 경우에도 장학금 범위 내에서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당하며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일상은 일상 전반에서 문화적 시각을 넓혀가는 과정이었다. 한국 사회가 일정한 표준을 두고 기준을 맞추려 한다면, 미국은 넓은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다양성 존중의 문화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공유되는 수많은 이견과 신선한 시각을 경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 깊었다. 효율성보다는 과정의 포용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와 조직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소통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생활한 이타카 지역은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매우 높아, 동반한 아이들이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다양한 배경을 이해하며 관점을 넓혀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감동적인 경험이었으며,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가 얼마나 풍요로운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지 직접 목격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또한 미국은 한국처럼 편의점 행사상품을 구입할 때 결제 시 자동으로 혜택이 적용되는 등 직관적인 편의성에 익숙했던 내게, 내가 원하는 바를 스스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요구해야만 비로소 권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였다. 이처럼 모든 것을 스스로 설명하고 쟁취해야 하는 환경은 안주해 있던 안전지대를 벗어나, 언어적 소통과 주도적인 태도 면에서 한 단계 성장하는 도전적인 계기가 되었다.
험프리 펠로우십은 단순한 안식년이나 학위 취득 과정이 아니라, 이미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에게 인생의 후반전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독립성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선물하는 프로그램이다. 준비 과정에서 영어 성적이나 에세이 작성, 직장과의 조율 등으로 주저하고 있다면 망설임 없이 도전하길 바란다. 나 역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귀국 후 아이가 한국의 학업 과정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그리고 10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미국에서의 시간이 과연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 부단히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본 현지에서의 시간은 그러한 염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아이에게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주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고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워주었다. 결과적으로 세상과 자신을 향한 인생관을 한층 넓혀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쉽지 않은 선발 과정을 감수하고서라도 안전지대를 벗어나 보길 바란다. 그 선택은 향후 공직 생활과 인생의 여정을 더욱 풍요롭게 채워줄 좋은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