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jae Han

한우재 (WooJae Han)
2025 Visiting Scholar Program
George Mason University, Social Work and Criminology

 

“We the People — 250년의 약속, 그리고 우리의 차례“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한우재 교수

 

미국의 심장부에서 마주한 건국의 언어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이번 2026 Spring Philadelphia Scholar Seminar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모인 150여 명의 풀브라이트 학자들이 나흘간 함께 미국의 건국 이념을 탐구하는 자리였다. 저마다 전공도, 배경도, 쓰는 언어도 달랐지만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문서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금세 하나의 대화로 이어졌다.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단어는 “We the People”이었다. National Constitution Center에서 독립선언서의 수석 큐레이터인 Emily Sneff 박사와 함께한 세션에서 이 세 단어의 무게를 처음으로 제대로 느꼈다. 헌법 서문의 첫 구절로 시작된 이 문장은 단순히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독립전쟁부터 노예해방, 여성참정권, 시민권운동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스스로의 모순과 맞닥뜨릴 때마다 꺼내들었던 언어였다. 사회복지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라는 질문이 결국 ‘누가 People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공간에서 새삼 깨달았다.

역사는 박물관 밖에서도 계속된다

National Constitution Center의 강연과 함께 인상을 남긴 것은 Independence Mall 일대를 직접 걷는 인터랙티브 워킹투어였다. 독립기념관, 자유의 종, 건국의 아버지들이 걷던 그 거리를 두 발로 밟는 경험은 새로웠다. 전날 강연에서 들었던 내용들이 공간과 겹쳐지면서 비로소 살아있는 역사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날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의 Michelle Craig McDonald 박사가 클로징 기조강연에서 “역사는 박물관 안에 머물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흘간의 경험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건국 초기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한 펜실베이니아 대학 Emma Hart 교수의 기조강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처음부터 완성된 민주주의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실패하고 되묻고 다시 쓰는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그것이 오히려 이 나라의 강점이라는 역설이 낯설지 않았다. 복지국가의 역사 역시 그런 과정의 연속이 아니던가.

미국의 건국이념과 풀브라이트 정신

풀브라이트 학자로 선정되고부터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이 어떻게 지금까지 80년을 유지해왔을까. 단순히 한 사람의 기부로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보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세미나에서 그 답의 일부를 찾은 것 같다. 풀브라이트의 정신—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지식을 나누고 상호 이해를 넓힌다는 이념—은 “We the People”이 담고 있는 보편성의 이상과 깊숙이 맞닿아 있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 정신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전 세계로 퍼뜨려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미나 내내 이 질문이 수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올라왔다. 한국도 이제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나라고, 우리만의 사상적 유산과 공동체 정신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복지의 언어로 말하자면, 돌봄과 연대,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가치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몸으로 실천해온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것을 세계와 나누고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가장 귀한 경험은 결국 사람이었다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사실 강연 내용보다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미국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귀한 경험이었지만, 각국의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꺼내놓고 서로 물음을 던지는 시간은, 평소 학회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달랐다. 경쟁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분위기, 전공의 경계 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이 새로웠다. 내 옆에 앉은 학자가 사회복지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어도, 결국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더 나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같은 질문이었다.

풀브라이트 스칼라로서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계 곳곳의 동료들과 생각을 나누어볼 수 있었다는 것—그것이 풀브라이트와 이번 세미나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