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진 (Kajin Kim)
2018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Hunter College, Fine Arts (MA)

풀브라이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순수미술 분야를 지원하는 장학 재단입니다. 순수미술이 가진 가치와 전문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재단이라는 점이 미술을 공부하는 저에게는 큰 응원처럼 다가왔습니다. 미국에서의 유학은 미술에 대한 저의 시야를 넓혀주고 작가로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믿었기에 풀브라이트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풀브라이트를 통해 배우게 된 것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풀브라이트 오리엔테이션과 게이트웨이 프로그램 그리고 뉴욕에서의 다양한 풀브라이트 사교 모임을 통해 교류하게 된 풀브라이터들은 제가 이전에는 만나보지 못했던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풀브라이트 지원 동기와 유학 목적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유학 경험 동안 미래를 꿈꾸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들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롭고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새로운 사고 방식을 접할 수 있었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습니다. 풀브라이트에 지원하기 이전에 취재를 기반으로 사회 이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송국 피디였던 한 풀브라이터는 유학을 마칠 때쯤에는 일반 대중들이 보다 주체적으로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를 만들고 싶다 했습니다. 단순히 기관에서 제공하는 문화 경험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대중 스스로 관심 분야를 발굴하고 그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벤트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을 통해 친해진 친구를 통해 기타리스트인 풀브라이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재즈 음악을 하는 동시에 멕시코에서 음악 학교를 세우고 음악을 경험하기 어려웠던 아이들에게 악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는 했습니다. 그 친구를 알게 되었을 당시에 저는 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었고 서로의 작업에 매력을 느껴 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풀브라이트가 아니었다면 이어질 수 없었을 인연과 작업을 같이 한 경험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풀브라이터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뉴욕 풀브라이트와 연관 단체인 ‘One To World’에서 수많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풀브라이트 출신이고 미술계에서 저명한 큐레이터이자 미술품 컬렉터가 주관하는 갤러리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로 빼곡히 차 있는 첼시에서 큐레이터, 예술사를 공부하는 학생, 미술 작가, 박물관에서 리서치를 하는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풀브라이트 그룹과 함께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벤트는 뉴욕에서의 네트워크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는 Zoom을 통해 사교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클래식 공연, 오페라 공연, 무용 퍼포먼스 등을 라이브 콘서트 포맷으로 제공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헌터 칼리지에서 3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동료 작가들과 서로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저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대학원에서의 수업은 주로 서로의 작업에 대한 토론과 현재 미술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이벤트들에 대한 생각을 주고 받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누구든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이에 또다른 피드백이 얹어지면서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이 빌드업 되었습니다. 상대가 관심을 가질만한 작가와 레퍼런스를 추천하기도 하고 함께 전시를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는 저만의 공간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에 익숙했고, 구상 단계를 마치고 나서 작업 제작에 들어간 뒤에야 동료 작가들에게 피드백을 듣고는 했는데, 헌터칼리지의 오픈마인드적인 환경에서 지내면서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작가들과 교류하는 방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보다 넓은 장에 저를 던져놓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변화하며 새로운 시각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발전이 결실을 맺은 곳은 저의 졸업 전시 때였습니다. 제가 작가로서 탐구하고 발전시켜보고 싶은 주제를 찾았고, 이와 관련하여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보다 깊게 파고들 부분이 무엇인지, 여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다른 개념과 생각들은 무엇이 있을지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재료 실험과 형식 실험의 중간 과정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해준 피드백에 대해 고려해봄으로써 저의 탐구 주제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의 폭을 넓혀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재료와 설치 방식을 택하였고 저만의 특색을 담아 내어 최종 작품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3년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졸업 전시는 온라인으로도 관람이 가능했습니다. 전시공간 전체를 3D 스캔하고 가상 공간에 재구현함으로써 갤러리를 직접 방문하지 못한 분들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고 저명한 갤러리인 ‘Hauser & Wirth’와의 협업을 통해 ‘Hauser & Wirth’의 메인 웹사이트에서 헌터 칼리지의 졸업전시가 온라인 버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미술계 종사자들에게 졸업 전시를 노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의 졸업 전시를 계기로 뉴욕의 한 갤러리인 ‘Swivel Gallery’를 운영하고 있는 분과 연결되어 필름 스크리닝과 개인전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갤러리 운영자는 저의 졸업 전시를 방문했을 당시 미술 작가들의 영화와 비디오를 스크리닝하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었고 저의 작업 세계에 흥미를 느껴, 저의 이전 비디오 작업을 스크리닝에 포함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미국에서의 공부를 끝맺고 떠날 시점에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학교 밖 사람들과도 저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게 되어 뜻깊었습니다. 내년 2월 저의 개인전을 예정한 채 미국을 떠나왔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왔으니 풀브라이트 동기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뿔뿔이 흩어져 지냈고 이러한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자주 모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한편 풀브라이트 측에서 미국 유학을 마친 풀브라이터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네트워크 유지 프로그램을 제공해주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전분야, 전세계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장학재단은 풀브라이트가 유일무이하다고 느낍니다. 미술을 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의 순수 미술계에서는 풀브라이트에 대한 인식이 높으며 풀브라이트 출신 작가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순수 미술을 하는 분들 중에 풀브라이트를 통해 유학을 가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미술인들에게 풀브라이트에 대해 보다 널리 알리고 풀브라이트를 통해 구축한 미술인 네트워크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