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림 (Jaerim Lee)
2021 Fulbright Visiting Scholar
Montclair State University

1. 풀브라이트 지원 동기

2011년에 전임교원으로 처음 임용된 저는 두 번의 이직 덕분에 10년이 지난 2021년이 되어서야 첫 연구년을 맞았습니다. 사실, 10년 동안 숨차게 달려오면서 연구년에 대한 장밋빛 꿈을 오래 꾸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가면 장밋빛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 여러 대학 홈페이지도 살펴보고, 교수들에게 연락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연구년 활용을 신청할 무렵 눈앞에 놓인 현실은 코로나19 팬데믹이었습니다. “이 시국에 무슨 해외 연구년이란 말인가?” 결국 해외파견은 신청도 하지 못한 채 연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풀브라이트 교수/전문가 장학금 안내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 기회가 아니면 10년만의 연구년이 그냥 흘러가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달렸습니다. 풀브라이트의 명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시국에는 코로나19 연구를 해야지”라는 생각에, 연구주제도 ‘재미 한인 어머니의 코로나19 시기 자녀양육 경험’으로 잡았습니다. 방문지역은 한인 커뮤니티가 발달한 뉴저지로 정했습니다.

2. 장학금 수혜자 선발 과정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9월 중순에 온라인으로 신청서류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선발 과정이 지연되면서, 거의 포기하고 있던 2021년 1-2월에 면접에 대한 안내를 받았습니다. 면접은 수많은 투명 가림막 사이로, 숨쉬기 힘든 마스크 너머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국에 왜 미국을 가려고 하는지 등의 질문에서부터, 코로나19 시기의 어머니들의 경험이 미국에서라고 크게 다르겠냐는 회의적인 질문까지 다양한 질의응답이 오고 갔습니다. 그리고 4월에 수혜자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후에는, 신속한 미국 비자 발급 등 풀브라이트의 후광 덕분에 수월하게 출국 준비를 했습니다.

3. 미국에서의 연구 및 생활

미국에서 6개월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이 창궐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1개월은 험난했습니다. 6개월만 렌트할 수 있는 아파트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차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낯선 곳에 정착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도착하고 1주일 만에 허리케인 아이다가 덮쳐서 렌트카가 크게 침수되기도 했습니다.

방문 기관인 몽클레어주립대학교에 출근하면서부터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백신 2차접종을 완료해야 캠퍼스 출입이 허락되었는데, 한국에서 1차접종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신부터 맞았습니다. 깨끗한 캠퍼스가 인상적인 몽클레어주립대는 1년 반 만에 대면수업이 재개되어 활기를 띠었습니다. 창문은 없지만 무척 넓었던 오피스는 연구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Zoom 교수회의에서 소개를 받으면서 만난 학과 교수들은 무척 따뜻한 분들이었습니다.

방문 기간에는 풀브라이트에 제출했던 연구의 자료수집에 몰두했습니다. 연구계획서를 작성할 때는 포스트 코로나19 경험을 연구할 줄 알았는데, 오미크론 한복판에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팬데믹 상황을 고려하여 Zoom을 활용하여 심층면접을 했는데, 한 분 한 분의 코로나19 경험이 어찌나 역동적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면접을 했습니다.

심층면접을 통해,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팬데믹 시기에 어떻게 작동했으며, 소득양극화가 심한 미국에서 지역별로 학교별로 차이가 어떠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와 2년에 걸쳐 코로나19를 겪어낸 어머니들의 고군분투를 이해하는 과정은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심각해진 아시아인 혐오 등 미국사회 인종과 민족의 문제에도 깊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의 6개월은 가족학자로서 중요한 키워드인 다양성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백인의 비율이 매우 높은 미국 중서부에서 유학생활을 한 저에게, 뉴저지와 뉴욕은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살펴본 것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4.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추천하는 이유

첫째, 경제적인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맨하탄에서 가까운 지역에 체류했기 때문에, 아파트 렌트비 등 물가가 매우 비쌌습니다. 팬데믹으로 식료품비 등 물가가 많이 오른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객지에서 생활하니 지출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는데,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둘째, 풀브라이트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현지 프로그램이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팬데믹으로 현지인들과의 교류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시기였지만, 풀브라이트의 지원을 받은 비영리단체에서 풀브라이터에게 제공하는 답사나 투어 프로그램이 무척 유익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세계 각국의 수혜자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 뉴욕의 햇살 아래에서 담소를 나눈 경험이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셋째, 학자로서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미국 내에도 많은 현안이 있고, 지원이 필요한 많은 이들이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이러한 도전적인 상황에서도 글로벌한 학문적 교류와 파트너십을 지원하는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을 75년동안 운영해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국제사회의 발전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 연구자이자 교육자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귀한 기회를 주신 풀브라이트와 한미교육위원단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