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덕 (Hyunduk Suh)
2024 Visiting Scholar Program
University of Virginia, Economics
1) 풀브라이트 지원 동기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미루던 연구년을 임용 10년차에 처음으로 쓰게 되었다. 풀브라이트 재단에 대해 들어 보고 막연히 고려하고는 있었는데, 지인이 최근에 수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선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크게 가지지는 않았지만, 내 연구 주제 (저출생의 경제적 효과)가 출생률이 세계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국제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고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2) 장학금 수혜자 선발 과정
지원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구비하여 제출하였고, 화상 인터뷰 일정이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화상 인터뷰는 나에 대한 부분과 내 연구 주제에 대한 부분으로 둘로 나누어 준비하였다. 나에 대한 부분은 나의 경력이 지금의 내 가치관을 어떻게 형성하였는지에 초점을 두었고, 연구 주제는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줄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등 가격변수의 방향은 예측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정량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최대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인터뷰 이후 한동안 시간이 흘러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맙게도 수혜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에 몇 차례의 수혜자 미팅을 거쳤고, 건강검진 서류를 비롯한 각종 서류를 준비하여 제출하였다. 건강검진서는 평소에 다니던 내과에서 의사선생님과 일대일 영어공부 하는 느낌으로 작성했는데, 살면서 의사와 가장 긴 시간을 대화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서류 제출 후 출국 예정일 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풀브라이트 덕분에 비자 인터뷰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처리가 원활해서 출국에는 문제가 없었다. 최근에는 전반적인 미국 비자 심사가 까다로워졌다고 하는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경험할 수 있도록 완화되길 바란다.
3)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의 유학 생활 전반에 대한 경험과 느낌
나는 Indiana University에서2008~2013년 5년 동안의 박사과정을 거쳤다. 그 때의 지도교수님이 본인 고향인 버지니아를 찾아University of Virginia로 이직한 상태였고, 나도 지도교수님을 다시 찾아 덕분에 University of Virginia의 방문학자로 1년을 지내게 되었다. 박사과정 때의 동기였던 Nathaniel Throckmorton 박사는 버지니아의 다른 명문학교인 College of William and Mary의 교수가 되어 있었고, 내가 연락하고 연구 주제와 모형, 방법론을 설명하여 같이 논문 작업을 공저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 때는 대학원생으로서 모든 면에서 배우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독립적인 연구자로 활동을 주도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또한 학생 신분과는 달리 사회인으로,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로 1년을 살다 보니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해 5년의 박사과정보다 오히려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변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전반적인 느낌은 박사과정 할 때와 비슷했지만, 그때와 달라진 분위기가 존재했다.
첫째, 내가 박사과정을 하던 2010년 전후는 미국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은 직후라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침체된 느낌이었는데, 지금의 미국은 자신감이 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이 2010년대 후반 AI혁신을 주도하면서 전 세계의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 주식시장이 역사적인 호황을 보였고, 덩달아 미국인들의 은퇴연금 수익률도 높아진 점 등 경제적인 원인이 크다고 생각한다.
둘째, 박사과정 때는 미국에 굉장히 중국인이 많고 미국 내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이번 방문에는 미국 내 중국인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대 초반은 중국이 크게 팽창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약해진 세계 경제를 지탱하다시피 할 때였고, 지금은 미-중 갈등이 격해진 결과인 것 같다. 상대적으로 중국인들이 빠진 자리에는 인도와 무슬림 계통의 사람이 많이 보였다.
미국에 체류하면서 오히려 한국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 한국의 소비수준은 미국에 비해 못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한국인들은 미제, 미국 물건을 좋은 것으로 여겼다. 내가 박사과정을 하던 2010년 즈음에는 이미 한국인들이 미국 제품을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만, 몇 가지 품목은 미국이 분명히 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미국 물가가 너무 올라서 아예 살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심지어 미국 브랜드들도 한국이 더 싸다. 물가를 떠나 실제 소비도 한국과 미국이 큰 차이 없어 보이고, 오히려 다수의 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호화로움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미국의 생활을 동경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서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서로 비교를 덜한다. 워낙 인종 구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매우 어렵다. 같은 지역에 산다고 해도 이탈리아 계의 삶과 인도계의 삶, 아프리카 계의 삶은 가치관과 생활 양식이 완전히 달라서 비교할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둘째 이유 역시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흑인은 동양인보다 평균적으로 운동을 잘한다. 동양은 흑인보다 평균적으로 공부를 잘한다. 이 예시를 든 이유는 다양성이 큰 사회에서는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게 하나는 있게 마련이고, 내가 아무리 잘하고자 해도 남을 따라잡기 어려운 것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존감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셋째로 미국 교육은 한국에 비해 어린 나이부터 책임감을 중시하고 심어주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자존감의 원천이란 내가 잘났다는 자세가 아니라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오히려 책임을 피하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는 오히려 자존감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넷째로 미국은 한국에 비해 불필요한 일, 소위 쓸데없는 일에 허비하는 시간이 적다. 나는 한국에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내가 작업한 미국 공저자는 거의 효율의 극단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시간에만 일하고, 주말은 가족과 지내는 것 이외에 일을 따로 하지 않지만, 업무 시간에는 정말 집중도가 높았다. 또한 프로젝트를 구조화하고 단계화하는 작업, 단계별로 에러가 발생했을 때 이전 단계로 되돌아가야 할 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감정에 시달리지 않고 최적화된 판단을 하면서 업무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양한 것을 요구하면서 막상 일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distraction) 편이며, 특히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쓸데없는)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4)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추천하는 이유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가장 큰 장점은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미국 관계자 들과의 네트워크, 전 세계에서 온 수혜자들 간의 네트워크, 국내 수혜자들 간의 네트워크 이 3중의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활용하기에 따라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흔히 미국 대학으로 연구년을 갈 경우 주위에 아는 사람이 없어 고생할 가능성이 큰데, 개인적으로 풀브라이트를 기회로 알게 된 네트워크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얻었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하였다.
5) 예비 지원자에게 주는 메시지
최근 동료 교수가 외부 펀딩이 없어 미국 연구년 비자 심사에서 거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 물가가 너무 올라서 많은 동료 교수들이 미국 연구년은 어렵다고 대안을 알아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빛과 소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건이 된다면 한 번 꼭 지원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