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Fulbright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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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세계적으로 평화에 대한 갈망이 최고조에 다다랐습니다.  J. W. Fulbright 상원의원은 상호 국민 교류가 세계 평화를 촉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미국과 전세계 국가의 교육 교류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제안했습니다. 이 법안은 제 79차 미국 의회에서 가결되어, 1946년 8월 1일 트루만 (Harry S. Truman) 대통령이 서명하며 법으로 제정되었고, 이것이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50년 4월 28일 양국간의 교육교류 프로그램 재정 지원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기로 서명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일체의 기금을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협정 체결 후 곧이어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시행되지 못하다가 10년이 지난 1960년 9월 1일 주한미국교육위원단 U.S. Educational Commission in Korea (USEC/K) 업무가 시작되었습니다. 1961년 9월 1일, 케네디 (John F. Kennedy) 대통령은 Fulbright-Hays Act로 잘 알려진 상호 교육 및 문화교류법에 서명했고, 1963년 6월 18일, 한미 양국 정부는 Fulbright-Hays Act에 근거해 새로운 양국 협약에 서명했습니다. 1972년 동 협정의 개정으로 한국 정부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을 분담하기로 결정하고, 1972년 7월 11일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협약에 서명을 한 후, 기관의 명칭도 한미교육위원단 (Korean-American Educational Commission)으로 변경했습니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전세계 약 160여 개의 국가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재정 및 행정적 지원을 받는데, 한국은 협약 체결을 통해 양국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가들 중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꾸준히 재정 지원의 비율을 늘려 근래에는 미국 정부와 동등한 비율의 재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한미교육위원단은 한미 양국 간의 교육 교류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독자적인 교육교류기관으로 70년 동안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약 7,300여 명의 한국인과 미국인 장학생을 배출하였습니다. 한국인 풀브라이트 동문들은 주요 교육기관 및 정계, 재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간의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 정부 협정 체결

한미 양국 정부 협정 체결

한미 양국 정부가 교육교류 프로그램 재정 지원에 관한 협정을 체결, 2,400만 달러의 재원으로 U.S. Educational Commission in Korea 설립을 결정

주한미국교육위원단 설립

주한미국교육위원단 설립

6.25 전쟁으로 중단된 협정을 재개해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과에 미국교육위원회 설립

한미교육위원단 (KAEC) 명칭 확정

Korean-American Educational Commission (KAEC) 으로 위원단 명칭 확정, 한미 양국 위원단 수를 각각 4명에서 5명으로 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