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in Oh

오지인 (Jiin Oh)
2020 Graduate Student Program
Columbia University, Film (MA)

저는 이야기를 읽고 쓰는 것과는 무관한 학부를 나왔고, 영화를 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나이 서른을 앞두고 웬만한 서울 시내 아파트 전세보증금보다 큰돈을 새 진로에 투자하기로 마음 먹은 상황이었습니다. 유학 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기에 어느 정도 모아 둔 돈이 있었음에도 3년 이상의 영화과 석사과정 학비는 부담이 컸습니다. 풀브라이트와는 별도의 학교 장학금을 추가로 제안한 컬럼비아대로 진학을 결정했습니다만, 악명 높은 뉴욕의 물가와 집세, 생활비, 그리고 단편 실습작을 찍느라 나가는 돈은 어마어마한 액수였습니다. 석사과정 중반 즈음 제가 따로 모아 두었던 돈 역시 바닥이 났고, 학업 중에도 끊임없이 학교에서 페이를 받고 일하는 스쿨잡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뉴욕이었지만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있었던 덕분에 제가 어느 정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만큼 아낀 돈을 제 실습작에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단편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 많은 품이 듭니다. 미국에 전혀 연고가 없던 저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풀브라이트 동기들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동기들은 제가 단편을 찍을 때마다 장거리를 운전해 와서 현장 제작팀으로 임해 주었고,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조연출을 맡아 주었습니다. 또, 배우로 출연해 주었으며, 관객으로서 제 영화에 진심 어린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서부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때는 함께 비행기를 타고 자리해 주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에 입학한 영화과 동기들 중 한국 사람은 저밖에 없었지만, 학과 밖 뉴욕에 함께 온 풀브라이트 동기들은 유학 생활 내내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수년간의 직장 생활로 사람에 지치고 편협한 냉소주의자가 되어 있던 저에게, 영화와 유학은 사람을 다시 배우는 경험이었습니다. 

 

유학을 떠나면, 당신이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때로 혼란스럽고 불편하게 다가옵니다그러나 관용과 포용을 배우게 될 겁니다. 나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앞선 누군가를 보고 좌절과 박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극은 지금도 훌륭한 당신을 더욱 성장하게 해 줄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세상과의 작용이 초반에는 설레고 들뜨는 경험으로 다가오겠지만, 얼마 안 가 피로가 누적될 것입니다. 당신은 점차 본인에게 편안한 영역과 페이스를 찾고, 그 안에서 중심을 유지하게 될 겁니다. 제가 그랬듯이요. 

 

누군가에게는 1년, 길면 5년 이상 걸리는 유학 생활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이 길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 그것은 장학금 이상의 가치였습니다. 새로운 채비 중인 당신을 응원합니다.